조선 제18대 왕 현종 때의 예송논쟁은 유교 예법을 서인과 남인이 정치에 이용한 사건
으로 1차 예송논쟁과 2차 예송논쟁으로 구분합니다. 예송논쟁이 일어난 이유는 현종이
19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해 정치적 경륜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서인과 남인간의 정치
갈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를 참조하세요.
<1차 예송논쟁 - 송시열 허목 간의 장례 예법 다툼>
1659년 효종이 승하하고 효정의 맏아들 현종이 즉위한 후 효종의 계모인 자의대비가
상복입는 기간을 둘러싸고 서인과 남인 사이에 의견이 대립한 사건으로, 송시열 등
서인세력은 효종이 인조의 차남이므로 자의대비가 상복을 1년간 입어야 한다고 주장
했고, 허목 등 남인세력은 효종이 비록 차남이지만 왕위를 계승했으므로 3년간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서인과 남인 간의 치열한 논쟁은 결국 현종이 왕명으로 자의대비가 1년 동안 상복을
입는 것으로 결정하고 더 이상 거론하지 말 것을 엄중 경고하면서 남인세력을 모두
귀양을 보낸 사건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임금이 승하(죽음)하면 상복을 입는 예법이 매우 엄격했습니다. 효종이
승하하고 효종의 장례 예법으로 서인들은 자의대비(효종의 계모)의 상복 입는 기간을
1년간으로 주장했고 남인들은 3년간을 주장했는데, 이 시기에는 서인들의 세력이 커
서인들의 주장대로 1년으로 결정되었으며, 이 바람에 남인들이 모두 귀양을 가게 된
것입니다.
<2차 예송논쟁 - 서인과 남인 간의 장례 예법 다툼>
1674년 현종 15년에 효종비 인선왕후가 세상을 떠나고 효종의 계모인 자의대비가
상복을 입는 기간을 둘러싸고 서인과 남인이 두번째 대립한 사건으로, 서인세력은
인선왕후가 둘째 아들 왕비이므로 자의대비가 9개월간 상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
했고, 남인들은 인선왕후가 장남의 왕비이므로, 자의대비가 1년간 상복을 입는 것이
예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현종은 자신의 아버지인 효종이 왕위를 계승한 것은 비록 차남이였지만 장남이
없는 상태에서 장남의 권위로서 계승한 것이 맞다고 판단하여 자의대비의 상복입는
기간을 1년간으로 정하고, 효종이 승하했을 때 1년간 상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한
서인들은 선왕의 권위를 깎아내린 것이라 생각하고 서인들을 모조리 귀양보냈는데,
이 사건이 제2차 예송논쟁입니다.
이사건 후 남인들은 청남파와 탁남파로 파가 갈라졌고 청남파는 송시열에게 사약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탁남파는 이를 반대했습니다.
'지식상식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지시거 추월시거 상식 (0) | 2016.10.21 |
---|---|
전어 뜻 유래 속담 상식 (0) | 2016.10.17 |
삐끼 뜻 여리꾼 뜻 (0) | 2016.10.05 |
주접떨다 뜻 (0) | 2016.09.18 |
상법상 회사의 종류 요약 설명 (0) | 2016.08.24 |
댓글